노가다 하다 만난 안전감시단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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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작년 이맘때.
군대를 갓 전역한 나는 진로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그렇다고 마땅히 하고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상가상 개인적인 가정사로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닐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전역 후 여행을 간다던가, 이리저리 유흥을 하며 지난 날 쌓인 회포를 풀 여력이 되지 않았다.
돈이나 벌자. 이 생각에 나는 전역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삼성 건설현장에 숙식 노가다를 갔다.
숙노 생활을 그리 고되지 않았다. 막노동이라곤 하나 일의 강도가 그리 쎄지 않았고, 말년에 군기 다 빠졌다곤 해도 아직까지 미약하게나마 군인정신이 박혀있었기에 묵묵히 일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슬슬 여름날씨가 낯짝을 들이밀던 6월 무렵. 그녀를 만났다.
공사현장엔 「안전감시단」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단어 그대로 공사현장의 안전을 감시하는 존재다.
보통 40대 아줌마 혹은 알바를 뛰러 온 청년들이 많다. 그런데 웬 이쁘장한 20대 여자가 안전감시단 하이바와 경광봉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닌가?
그녀는 160 초반의 아담한 키에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도저히 막노동 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이었다.
솔직히 안전감시단 조끼와 하이바가 아니면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녀와 말문이 트기 전까지 누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녀는 현장에서 일하는 남자들에게 당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저렴한 얘기가 오가는 그곳에서 심심찮게 그녀를 희롱하는 말이 오갔다.
나도 남자고 고추가 달려있으니 당연히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하지만 티내지는 않았다. 당시에 난 누굴 만나고 따먹고 나발이고 그럴 여력이 없었으니.
그러다가 우연히 그녀와 말문이 트일 일이 생겼다.
11시 30분에 오전작업이 끝나고 밥을 먹으면 1시까지는 쉬는 시간이다. 보통 한적한 곳에서 낮잠을 자곤 한다. 나도 그늘진 곳에 누워 잠깐이나마 쪽잠을 즐겼다.
그날도 밥을 먹고 평소처럼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 흡연장소로 향했다. 삼성현장은 흡연에 대해 무척이나 엄격하기 때문에 지정된 흡연 장소가 아니면 절대 담배를 피울 수 없다.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흡연장에 그녀가 등판한 것이다.
그녀가 품에서 담배 한 대를 물고 입에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 여자도 담배를 피는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내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불좀"
"불요? 아 네네...."
허둥지둥 라이터를 꺼네 불을 붙여준 것. 그게 나와 그녀의 첫 대화였다.
나는 그때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녀에게 말을 붙여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평소 친해지고..... 아니 따먹고싶다고 생각해왔고, 우연히 말을 붙인 이때까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 힘들지 않아요?"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살짝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듯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대답했다.
"글쎄요... 별로 힘들지는 않아요."
난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별 시답잖은 이야기였다는 거다.
수박 겉핥듯한, 영양가 없은 질문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는 짧은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가 미련없이 떠나는 그런 대화였다. 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흡연장에서 그녀를 찾았다. 다행히 그녀는 남들만큼이나 담배를 자주 폈고, 지정된 흡연장소가 몇 군데 없기에 그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그 생각이 당시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은 연장 작업이 없으면 작업이 일찍 끝난다. 대략 오후 3시 전에는 일이 끝나는데, 그 날 흡연장에서 또 그녀를 봤다.
처음 대화를 나누고 거진 2주는 지난 시점이었고, 그녀는 자기가 내게 담배불을 빌렸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성 싶었다.
나는 담배를 피다말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주말에 뭐하세요?"
"네?..... 그냥 숙소에 있는데요."
"아.... 영화 좋아하세요?"
"아니요."
딱 저랬다.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개쪽팔리는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단칼에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그녀였다.
나는 그때 체념했다. 아 나는 병신이구나. 하긴 지금 내 처지가 벼랑끝인데 영화는 니미.
그런데 그녀가 말했다.
"게임 해요?"
"게임이요? 네 하죠. 무슨 게임 하세요?"
"오버워치요."
"아 저도 오버워치 해요."
"잘해요?"
오버워치. 고딩때 친구들 따라, 군생활 할 때 동기들 따라 몇 판 한 게 전부였다. 나는 게임을 하면 롤만 했던 진성 롤충이었다.
그런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난
"웬만큼 하죠. 같이 할래요?"
내 되지도 않는 허세에 그녀는 대답했다.
"네."
그 누나의 숙소와 내가 머무는 숙소는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였다. 나는 33평 아파트에서 팀원 6명이랑 부대끼며 살았는데, 누나는 원룸에서 같이 일하는 30대 아줌마랑 둘이 지낸다고 했다.
토요일. 일을 마치고 숙소에서 얼른 씻은 나는 누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PC방으로 향했다.
오후 5시 무렵으로 기억한다. 그 누나는 가벼운 차림새로 왔다. 버프(자외선과 먼지를 막기 위해 얼굴에 두르는 천)를 착용하지 않은 누나의 얼굴은 귀염상이었다.
나와 누나는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오버워치를 켰다.
이 누나와 둘이 게임을 한다는 사실에 두근거리면서도 한편으론 실력이 뽀록날까봐 두려웠다.
잘한다고 입을 털어놨는데 보잘 것 없는 실력을 내보이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근데 게임을 켜는 중에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버워치 잘 하는 방법좀 가르쳐 줘요."
"ㅋㅋㅋ왜요? 오버워치 방송 하려고요?"
"아니요.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하려는데 제가 게임을 안해봐서요. 배우고싶어서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돼서 자초지종을 물어봤더니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누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타지에 일을 하로 왔다. 아마 돈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누나는 고향에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녀들은 모두 오버워치를 한다고 했다.
타지에 있으니 직접 만나지 못하고 게임으로나마 만나서 같이 즐기려는데, 누나 빠고 다들 오버워치를 꽤 하는 친구들이라 그들 사이에 껴서 게임을 못하겠다는 거다.
보아하니 이 누나는 오버워치를 시작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뉴비중의 뉴비였다. 더구나 원래도 게임에 별 취미가 없어 아주 기본적인 것들도 모르고 있었다.
나도 오버워치를 별로 안해봤지만, 대한건아로서 지난 몇 년간 이 게임 저 게임 하던 짬밥이 있었고 이 누나 입장에서는 나도 꽤 잘해보이는 착시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비유하자면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잡지는 못할지언정 가래떡 앞에서 주름잡는 시늉은 할 수 있던 것이다.
나는 누나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주며 같이 플레이를 했다. 나는 파라를 픽했고, 이 누나보고는 메르시를 픽하라고 한 뒤 나를 따라다니며 힐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사실 이전까지 내 역할이 친구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힐을 해주는 메르시였다.
어쨌건 그날은 별탈없이 3시간정도 게임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표정한 그녀였지만 함께 이기고 지고 할 때마다 웃거나 탄식하는 등 반응을 보였고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게임에 내력이 없는 누나는 세 시간쯤 지나니 슬슬 지쳐갔고 우리는 피시방을 빠져나왔다.
"밥이나 먹을래요? 제가 살게요."
"네. 밥 먹어요. 근데 제건 제가 계산할게요."
"아 그런데 그쪽 이름이 뭐에요?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아... 전 AAA에요."
"전 KKK에요."
"아... 네."
우리는 뭘 먹을까 하다가 동네에 있는 24시간 국밥집에 갔다. 그녀가 먼저 국밥을 먹자고 한 것이었다.
레스토랑이라도 데리고 가야하나 비쌀텐데, 이런 고민을 했던 내게 참 고마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국밥집에 가서 소주도 안 시키고 국밥 두 개만 달랑 시켜서 이런 저룬 얘기를 나누었다.
"되게 어려보이는데 몇살이에요?"
"저 안 어려요."
"몇 살이신데요?"
"25이요."
"네??? 저보다 누나시네요."
당시 난 23살이었으니, 나보다 2살 연상의 누나였던 것이다. 나이 밖에도 일 얘기, 숙소 사는 얘기 등을 나누었다. 개인적인 얘기들. 이를테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일 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등은 물어보지도, 질문 받지도 않았다.
왜냐면 서로가 그런 질문들은 민감한 사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단 것 같다.
사실 공사판이 인생 막장들이 최후의 보루로서 오는 그런 느낌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우리는 정말 건전하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 서로의 연락처를 받은 뒤 깔끔하게 헤어졌다.
그 후 몇주간은 정말 건전하게 보냈다. 현장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꾸벅여 인사를 나누고, 주말에 같이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며 서로 말도 놓고 친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서로의 사생활은 묻지 않고, 게임이나 밥 이상의 교루는 나누지 않는.
물론 나는 이 누나와 좀 더 진도를 나가서 술도 마시고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모텔방까지 입성하는 상상을 매번 했다.
하지만 괜히 그런 짓을 시도하려 했다가 지금 관계가 파탄날까봐 그러지 못했다. 어쨌건 집떠나와 친해진 첫 또래 여자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주로 토요일 저녁에 만났는데 이 누나가 먼저 내게 술을 한잔 하지 않겠냐고 권했다.
우리는 허름한 호프집에 가서 치킨에 맥주를 시키고 술을 홀짝였다. 근데 누나 표정이 어두웠기에 내가 먼저 화두를 던졌다.
"누나 무슨 고민 있어요?"
"고민....까지는 아닌데"
술이 들어간 누나는 막힘없이 고민을 꺼내놨고 요점은 이거였다. 공사현장에서 본인에게 집적대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다. 우리 팀뿐 아니라 어느 곳에사도 누나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거의 대부분 남지이고, 여자라 해봐야 40대 아줌마가 주를 잇는 이곳에서 20대 여자가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근데 내 생각보다 덩도가 더 심했다.
허구헌날 남자들. 20대는 고사하고 30대, 40대 심지어 머히 희끗한 할배들까지 작업을 건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런 제안들을 칼같이 잘라 거절했는데, 그랬더니 같이 일하는 안전감시단 아주머니들한테 가서 자기가 싸가지 없다는 둥 흉을 보는 사람들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어찌보면 나랑 그들이랑 근본적으로 차이도 없을 테니.
나는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냈다.
"남자친구라도 하나 만들면 되죠."
"남자가 있어야 남자친구를 만들지. 그리고 내 처지에 무슨...."
"그럼 그냥 남자친구 있다고 해요. 그러면 좀 낫지 않으려나?"
"그럴까? 네가 내 남자친구라고 할래?"
"ㅋㅋㅋ네? 뭐 누나가 편하면 그렇게 하세요ㅋㅋ 누나 그런데 나는 왜 만나요? 나도 처음에 누나한테 영화 좋아하냐고 그랬는데 집적댄 거 아니에요?"
"나한테 작업 건 거였니? ㅋㅋ 글쎄. 넌 착하게 생겨서."
우리는 그날 딱 적당히 취기가 오를 때까지만 맥주를 마시고 헤어졌다. 그때는 누나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떡을 치고 뭐고 그런 마음은 들지도 않았다.
그 날 이후 우리는 계속 만나서 오버워치를 했고 또 가끔 술도 마셨다. 노래방을 가기도 했고 버스타고 몇 정거장 가서 볼링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그 날이 밝았다.
숙식 노가다는 주6일이 기본이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월~토 일하고 일요일 하루 쉬는 구조이다. 심지어 일요일에도 일하러 나가는 아저씨들이 있기도 했는데, 대부분 주말이면 본가로 가기 일쑤였다.
내가 지내던 숙소는 나 빼고 전부 가정이 있는 형님들이어서 토요일 일 끝나면 숙소엔 거의 나 혼자였다.
토요일이 되면 근처 피시방에 가서 누나와 함께 게임을 하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는 게 어느새 일상이 됐다.
공사는 계속 진행됐고 어느덧 무더운 여름날이 되었다. 작년 여름은 정말 미칠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것 다들 알 거야.
내가 있는 숙소는 신축 아파트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 본가보다 훨씬 시설도 좋았다. 방마다 에어컨이 있었고, 보일러도 잘 돌아가 따뜻한 물이 항시 나왔다.
그래서 삶의 질만 놓고 보면 노가다를 하기 전보다 나을 정도였다.
반면 누나가 살던 원룸은 지어진지 오래 된 빌라를 리모델링 한 거였는데 에어컨이 없었다. 그 더운 여름을 선풍기 하나에만 의존해서 버틴다고 했다.
어쩌다 에어컨 얘기가 나오고, 누나는
"숙소 들어가기 싫어. 완전 찜통이야."
라고 내게 하소연했다. 그때 무슨 정신이었는지 나는 누나에게
"내 숙소 와서 쉬다갈래요? 에어컨 빵삥해서 엄청 시원한데."
"에이... 아저씨들 다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
"내가 사는 숙소 주말되면 나밖에 없어요. 일요일 저녁까지는."
"진짜?"
"숙소도 가까운데 좀 있다 가요."
"....그럴까?"
PC방에서 하던 오버워치를 마무리 하고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추가로 덧붙이자면 내 오버워치 성적은 뽀록났다.
누나는 누나 친구들과도 게임을 했고, 어느정도 오버워치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내 티어 점수가 별볼 일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고 여전히 우리는 함께 게임을 했다. 어떤 날은 누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다.
물론 누나 친구들은 전부 상위급 실력자들이어서 우리는 쩌리밨에 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때보다 즐거워하는 누나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누나 친구들에게 누님, 누님 하며 친근하게 굴었고 언제 화성에 놀러오면 같이 밥이나 먹자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건 나와 누나는 내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맥주라도 사가자 말하고싶었지만, 작업 치는 게 너무 뻔히 보이는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근데 누나가 먼저 시원하게 맥주나 마시자고 먼저 권했다.
우리는 4캔에 만원 하는 수입맥주와 과자를 사서 숙소로 향했다. 디행히 아무도 없었다.
"와 너네 숙소 되게 좋다."
"그런가? 사실 우리 집보다 좋아요 ㅋㅋ"
우리는 거실에서 에어컨을 18도까지 낮추고 맥주를 홀짝였다. 어색할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놀랄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난 은근슬쩍 물었다.
"요즘엔 아저씨들이 집적거리지 않아요?"
"응? 똑같지 뭐..."
"남자친구 있다고 말 안했어요? 아니면 말 했는데도 집적거리는 건가?"
"남자친구 있다고 말 안했어 ㅋㅋ 남자친구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해."
"에이 누나도 참. 내가 남자친구라고 말 하라니까."
"ㅋㅋㅋㅋ 야 어떻게 그래. 졸지에 나같은 게 네 여자친구가 돼버리는데."
그 따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 누나의 자존감이 이토록 낮아졌구나. 자기 따위를 어떻게 내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냐느냐는 누나의 말이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나도 보잘 것 없는 놈인데. 그래서일까.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난 말했다.
"누나가 어때서요. 솔직히..... 가능만 하면 누나랑 사귀고 싶을 정도인데."
"...어? 에이... 나같은 애랑 뭐하러."
"예쁘잖아요. 성격도 좋고."
"....아니야."
이 때 난 이제까지 우리 둘 사이에 있던 암묵적인 룰. 민감할 만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깨고싶었다. 누나에게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그리고 어쩌다 이 공사현장까지 와서 일하고 있는지 알고싶었다.
그래서 집요하리만큼 캐묻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누나가 도망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알게됐다. 누나가 공사현장까지 오게 된 경위와 누나의 지난 과거를.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누나는 한마디로 말하면 나보다 훨씬 막장의 인생을 달리는 여자였다.
누나는 어릴 적부터 가정환경이 불우했다. 아버지는 있지도 않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엄마는 알콜 중독자였다고 한다.
고등학교도 간신히 나왔으니 대학 문턱을 넘을 일도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나도 별로 대학에 미련은 없다고 했다.
성인이 되니 나라에서 주던 지원이 끊겼는데, 누나는 그 길로 엄마를 내버리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얼마나 미웠는지 그때까지도 엄마의 얼굴이 보기 싫다고 하면서.
누나는 무작정 고시원에 들어갔고, 근처 옷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수입이 너무 적어 고시원 월세에 생활비를 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21살때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인생이었다고 하면서.
그때 우연히 핸드폰 어플로 어떤 남자를 알게 됐는데, 그 놈이 자기에게 "스폰"을 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단다. 그게 뭐냐고 했더니 쉽게 말해 달마다 일정 액수의 돈을 받고 섹파로 지내는 것이다.
누나는 별 고민도 없이 승락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나 한달에 60~70만원, 많게는 100만원 가량을 받으며 밤일을 했다.
그런 생활을 이어오던 중 그 남자가 불현듯 연락을 끊었고, 씀씀이가 커진 어릴적 철없던 누나는 곧바로 다른 스폰을 만들어 돈을 받고 섹스를 해주었다.
많이 받을 때는 한달에 300만원도 받아봤다며 어색하게 웃던 누나가 그렇게 슬퍼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23살 무렵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고 했다. 돈좀 달라는 요청이었고, 누나는 열불이 올라 모아둔 돈 1000만원을 던져주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고 자기를 딸이라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그렇게 밤일 아닌 밤일을 하며 지내던 누나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임신. 버림받음. 낙태.
누나는 인생에 큰 회의감을 갖게 되었고 마치 자기가 제일 싫어하던 엄마처럼 술만 먹으며 골방에 틀어박혀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 때 나타나 손을 잡아준 것이 오버워치의 그 누님들이었다.
누나는 더이상 몸을 팔지 않았고 그 길로 공사현장에 나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내게 그 이야기를 했던 누나. 측은지심이 이런 것일까. 누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동정밖에 들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남정네들의 러브콜을 단칼에 거절한 이유도 그것이리라. 이젠 남자의 호의만 봐도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고 했다.
자기가 더러운 년이라고 자책하는 누나에게 난 어줍잖은 위로의 말을 건냈고, 마치 위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내 인생도 누나 못지 않게 하잘 것 없다고 설명을 늘어놓었다.
한바탕 울음소동이 그치고 고작 두당 맥주 두캔에 잔뜩 취한 우리는 그저 키스했다.
키스하고 더듬고 벗겼다. 그리고 조용히 거사를 치루었다.
둘만의 전야제가 끝나고 난 누나에게 성욕에 못이겨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미안해요 누나."
"괜찮아. 단지 나같은 애랑 이런 관계여도 괜찮겠어?"
"그런 말 좀 하지마요. 솔직히 나 누굴 챙길 여력은 되지 않아요. 근데 그냥 이정도. 일 끝나면 누나랑 같이 게임하고 밥먹고 가끔 술먹고 에어컨 쐬고 이정도는 할 수 있어요. 나랑 계속 놀아줘요."
"좋아."
좋아. 누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뒤로 우리는 사귀는 것도 썸타는 것도 아닌 관계. 게임하고 밥먹고 술먹고 에어컨 쐬고 또 가끔 기분인 날은 몸을 섞는 관계를 맺었다.
어떤 날은 모텔방에서 어떤 날은 내 숙소에서 또 어떤 날은 누나 숙소에서 거사를 치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9월 말 담당 라인 공기(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이 끝이났다.
미칠듯이 햇볕을 내리쬐던 여름도 훌쩍 가버리고 어느새 단풍의 계절이 돌았다.
공사현장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밤 늦게까지 연장 작업을 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식비나 담배, 핸드폰, 그리고 누나와 소소하게 노는 것 빼고는 돈 나갈 일도 없으니 통장에 돈도 두둑히 쌓였다.
9월 말 무렵. 담당라인 공기가 끝났고 난 세 가지 갈림길에 섰다.
첫번째. 기존에 활동하던 팀을 따라 평택 고덕 현장에 가서 일을 시작할 것인지.
두번째. 새로운 팀을 구해서 일을 할 것인지.
세번째. 이제 노가다 일을 그만두고 대학을 복학 하던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인지.
내가 있던 팀의 팀장님은 나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사실 젊은 애들이 노가다를 뛰겠다고 오면 거진 한달도 버티지 못하고 추노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나는 한 팀에 말뚝 박고 거진 반년가량을 일하니 싹수가 있는 놈이라고 하셨다.
나도 이 팀이 맘에들었다. 일단 같이 일하는 형님들도 모두(사실 모두라곤 할 수 없지만) 친절한 편이셨고, 일당도 계속 올라 페이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마음같아서는 이 팀을 따라 내년까지 일하고싶었다. 그러면 모아둔 돈을 바탕으로 뭐든 할 수 있을 테니.
따라서 두번째, 세번째 선택지는 내게 그닥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바로 누나였다.
난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누나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안전 감시단은 보통 한 라인 공기가 끝나면 같은 현장 다른 라인으로 옮겨 일하기 일쑤였다. 난 누나가 화성에 남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만약 누나가 남는다면 화성에 다른 팀을 찾아 누나와 함께 있을지, 아니면 팀을 따라 평택에 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들려온 답변은 예상 외였다.
"나 이제 이 일 그만두고 서울로 가려고."
누나는 고향인 서울로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오버워치 누님 중 한 명과 함께 동거하며 오버워치 누님의 지인이 운영하는 화장품 가게에서 일한다는 것이었다.
장사도 아주 잘 되는 가게이고, 단순 알바가 아닌 정직원이 되는 일이기에 미래를 생각하면 아주 합리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었다.
평생이고 뙤약볕 내리쬐는 공사장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 가는구나."
".....응."
다만 아쉬웠다. 서울. 내 고향인 경남 창원과 거리도 무척이나 멀다. 더구나 내가 다니는 대학이 서울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헤어지면 사실상 누나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제 가는데요?"
"바로 다음주야. 일 마무리 되면 짐 정리해서 바로 가야지."
"미리 언질이나 해주지 그랬어요."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며 나를 안아주던 누나의 온기가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다.
"있잖아. 나랑 같이 서울에 내 친구들 보러 가지 않을래? 같이 술 한잔 하자."
누나는 내게 오버워치 누님들과 함께 만나 술을 하자고 했다. 난 흔쾌히 승락했고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헤어졌다.
난 팀을 따라 평택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현장일이 마무리 된 후 팀장님의 봉고차를 타고 새로운 숙소를 향해 갈 때 온통 누나생각 뿐이었다.
일은 바로 시작됐다. 위치가 화성에서 평택으로 바꼈다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똑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흡연장에 가도 담배피는 누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나 약속의 날이 되었다. 토요일이었다.
난 팀장님께 말씀드려 토요일 일을 하루 뺐다. 감사하게도 팀장님은 흔쾌히 승락해주셨고, 차비랑 술값을 하라며 10만원이란 거금까지 용돈으로 주셨다.
난 곧장 버스를 타고 서울. 누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누나는 구로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 서울 구로에 가서 누나를, 그리고 오버워치 누님들을 만났다.
누나와 같이 사는 누님은 푸짐하고 인상이 무척 좋으신 분이었다. 다른 한 분은 깍쟁이같은 이미지였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눈물이 정말 많으신 누님이었다.
그리고 누나는..... 예쁘게 꾸민 모습이 정말로 예뻤다. 평소 공사현장의 작업복 차림 혹은 청바지에 티셔츠, 캡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아닌, 화장을 하고 말끔한 옷을 입고 있었다.
"누나 그렇게 입고 있으니까 진짜 예쁜데요."
"....아니야."
예뻐진 누나의 모습이 (원래도 예뻤지만) 좋았지만 한편으론 조금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배덕감 같은 것이리라.
이제 누나는 나같은 거 잊고 이곳 서울에서 새삶을 꾸려나가겠구나. 하는......
"네가 KKK구나? 만나니까 정말 반갑다. 밥 먹으러 가자!"
"네. 누님."
오버워치 누님들은 소고기를 사주겠다며 아주 좋은 고기집에 가서 내게 소고기를 먹여주셨다.
그러는 동안 나와 누나 사이에 있었던 일, 또는 누나의 옛날 일 등등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내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그럼 넌 이제 뭐 할 거야? 계속 공사일 하려고?"
"글쎄요 ㅋㅋ 일단 내년까지는 계속 하려고요."
밥을 다 먹고 우리는 PC방에 가서 함께 오버워치를 했다. 그 순간은 정말 내 인생에 다시 없을만큼 즐거운 순간이었다.
거의 내리 4시간 가량을 오버워치로 불태운 우리는 저녁 식사겸 술을 마시기 위해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엄청. 정말 엄청 술을 마셨다.
그리고 깍쟁이 누님의 눈물샘 또한 같이 터졌다. 누나가 불쌍하다며 대성통곡하는 깍쟁이 누님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누나가 친구 하나는 잘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워치 누님들은 내게 누나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잘 챙겨주긴 무슨...... 나도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수작부린 것 뿐인데.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굳이 티내지는 않았다. 그 순간을 망치기 싫었으니까.
술을 진탕 마시는동안 이상하리만큼 나는 누나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주로 오버워치 누님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형식의 대화가 진행됐으니.
2차 3차를 거치니 밤이 되었고, 체력도 한계에 이르렀다. 슬슬 자리가 정리 되려고 했다.
그때 누나가 나를 슬쩍 불러냈다.
"우리끼리 한잔 더 할까?"
"네 좋아요."
누님들은 우리 둘이 한잔 더 하고 들어간다는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고, 인상이 좋은 누님은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리고 나와 누나는 만원에 4캔 하는 수입맥주와 과자 쪼가리를 사들고 모텔방으로 향했다.
우리는 술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마지막 전야제를 즐겼다. 아직도 인상 깊은 것은 전야제가 진행되는 동안 쾌락섞인 신음소리보다도 "고마워" "미안해" 라는 말이 더 많이 오갔다는 것이다.
새벽이 지나 아침이 밝았고 우리는 땀과 눈물 범벅인 얼굴을 대충 씻고 국밥집에 가서 국밥을 먹었다.
그리고 별다른 거창한 작별인사 없이 담백하게 헤어졌다.
사실 맘같아서는 일요일 내내 누나와 함께 있고싶었지만 누나는 힘들어서 자고싶다고 했고, 나도 내일 일을 생각하면 얼른 평택으로 내려가 쉬는 편이 현명했다.
난 그길로 평택으로 내려왔다. 버스에서 누나와 시시콜콜한 내용의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버스에서 주고받은 몇 마디 카톡이 마지막이었다.
난 누나와 헤어짐에 있어 생각만큼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주말에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막 미치도록 누나가 보고싶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멋진 사람이 되고싶었다. 돈도 많이 벌고 비까번쩍 해져서 언젠가 누나 앞에 다시 나타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오버워치를 하는대신 자기계발을 시작했다. 물론 계획대로 딱딱 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인생의 구도는 잡혔다.
가을이 지나 추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 다시 꽃피는 봄이 왔다.
난 정확히 2019년 2월 23일부로 노가다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본가로 내려왔다.
그 기간동안 누나와 한 연락은 일체 없었다. 가끔 누나의 SNS를 염탐하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집안 사정도 많이 양호해졌고, 나는 내 학교의 자매결연으로 맺어진 일본 대학에 유학을 준비중이다. 아마 6월 전에는 일본으로 떠날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누나의 근황이 궁금하다. 하지만 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좀더 의엿해진 모습이 되었을 때. 그 때 누나를 한 번 찾아갈까 생각하고 있다. 아마 꿋꿋이 잘 살고 있으리라.
인생 밑바닥까지 던져진 경험이 내게 가장 값진 추억이 되었다. 난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며 감상에 젖곤 한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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