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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난 가출한 여중생 썰

냥냥이 0 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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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전 얘기네.

 

 

 

2013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야. 나는 이때 대학교 4학년이었어. 대학생활 내내 공부보다 알바를 더 열심히 했었는데 그래서 또래 친구들 보다 조금 일찍 차를 끌고 다닐 수 있었어. 대신 스펙은 엉망이었지. 그러다가 4학년 가을쯤부터였나? 지금처럼 살다가는 취업이고 뭐고 평생 알바만 하겠다 싶더라. 그래서 하던 알바 다 관두고 뒤늦게 공부에 불을 붙였는데 이때부터 졸업할때 까지는 거의 새벽 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게 루틴이었어.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도서관에서 나와 집에 가고있는데 차도 별로 안다니는 대로 한복판에서 여자애 하나가 내 차를 세우는거야. 워낙 작고 왜소한 애여서 무섭다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그래도 낯선 상황에 경계심이 생겨 창문만 내린채로 왜그러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애가 기차역 까지만 좀 태워달라고 하더라. 조금 꺼림찍 하더라고. 어린 학생같긴 하지만 낯선 사람을 차에 태우는건 아무래도 찝찝하잖아?  어떤 안좋은일에 엮일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처음엔 조금 난처한 내색을 했는데 어린 여자애가 벌벌 떨면서 부탁을 하니 거절하기가 어려워 결국 태워다 주기로 했어.  이때 얘 옷차람이 어땠냐면 거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팔 박스티 하나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있었어. 겨울이었는데.... 

 

 

 

나는 얘를 차에 태우자 마자 왜 그렇게 춥게 입고 이 새벽에 기차역을 가냐고 부터 물어봤지. 내가 그런걸 알아야할 권리는 없는데도 얘는 무덤덤하게 내 질문에 다 대답해주더라. 

 

 

 

스토리는 이랬어. 얘는 아버지랑 둘이 살고 있었고 가정폭력이 심했나봐.  얘가 아는 경찰도 있나보던데 경찰조차 아버지랑 떨어져있기를 권장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한동안은 가출청소년들을 보살피는 새터라는 곳에서 지냈었대. 내가 보호 시설에 대해서 함부로 말했다가는 혹시 문제생길수도 있으니 들은 얘기를 상세히 적지는 못하겠지만 선배들이 안좋은 일들을 굉장히 많이 시켰더라고.  거기도 있을곳이 못돼서 결국 도망쳐 나왔는데, 지역에 유명한 양아치는 다 엮여있는지 새터 선배들한테 잡힐까봐 타지역으로 도망을 갔다더라고. 그렇게 땡전한푼 없이 맨몸으로 도망치고는 당장 갈곳도 없고 날씨는 추우니까 아파트 맨 꼭대기층 사람 안다니는 계단에서 잠을 잤대. 바닥이 차가운데 어떻게 잤냐고 물었더니 무덤덤하게 벽에 기대서 살 안닿고 쭈구려 앉는 자세를 보여주는데 마음이 아프더라. 

 

 

 

얘는 폰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서 배고픈건 어떻게 해결했을지도 궁금했지만 왠지 더 마음아픈 얘기를 들을것 같아서 더이상은 물어보지 말자 생각했지. 근데 얘가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던걸까. 아니면 나랑 무슨 거래를 하자는 뜻으로 그랬던걸까. 자기가 먼저 술술 얘기를 하더라고. 원조교제를 한 얘기, 재워줄 사람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얘기, 모르는 아저씨네 집에서 살았던 얘기까지.  

 

마지막에 만난 아저씨가 방을 잡아줘서 거기서 지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얘가 그날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혀서 아버지한테 연락이 갔고 집에 끌려와서 또 엄청 맞았나보더라고. 그리고는 새벽에 다시 도망가다가 나를 만난거고 첫차를 타고 누가 잡아줬다는 그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차역에 데려다 달라 한거였어.

 

 

 

이런 얘기를 하면서 기차역에 새벽 2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어. 첫차가 다니려면 아직 한참 남았길래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냉큼 라면을 사달라고 하더라. 더 맛있는거 골라보라고 했더니 라면이 제일 먹고싶다길래 근처 김밥천국에 가서 같이 밥을 먹었지. 그때 갔던 김밥천국에서는 신라면을 쓰더라고. 얼큰한 국물에 표고버섯 향이 일품인 농심 신라면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라면이기도 해......는 장난이고.

 

 

 

밥을 먹고 나와서 기차역에 데려다줬는데 새벽시간 기차역에는 노숙자들이 왜이렇게 많은지. 헐벗고 있는 여자애 하나 놓고 갈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생각한게 24시간 카페라도 데려다 줘야겠다 싶었는데 또 주변에 그런게 없었어. 나도 다음날 일찍 학교에 가야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며 다시 차로 데려갔는데 애가 금방 잠이 들어 버리네... 그래서 그냥 히터 빵빵하게 틀어주고 편하게 자라고 나도 자는척 했어.

 

 

 

옆에서 애는 자고있고. 밤을 샜더니 머리는 멍하고. 들은 얘기들은 너무 충격적이고. 이때 참 많은 생각을 한거같아. 불우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고있는 이 애가 너무 가여웠고, 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능력이 안되는 내 처지를 한탄도 했어. 사회에 대한 원망도 했고... 그렇게 아침까지 이생각 저생각 하며 선잠을 자다가 첫차시간이 다가올때 애를 깨웠어. 얘도 진작에 깼는데 그냥 자는척 하고 있었던거 같더라.

 

마침 다행히도 차에 담요가 두개 있었는데 하나는 위에, 하나는 밑에 치마처럼 둘러주면서 나쁜길에 발 들이지 마라. 학교는 계속 다녀라 등등 무책임한 꼰대 잔소리나 하며 차비 조금 쥐어주고 작별인사를 했어. 얘가 돈 받자마자 액수부터 확인하는게 조금 괘씸하긴 했는데 내가 먼저 갈때까지 계속 쳐다보고 있더라 또 짠하게.

 

 

 

별일 아닌 얘기지만 나한테는 꽤 강렬한 기억이었고 크리스마스에 문득 그애 생각이 나서 한번 주저리 주저리 적어봤어. 

 

15살이었던 그애는 나를 기억이나 하려나. 그냥 따듯한 남자 어른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기억해줬음 좋겠다.

 

지금은 20살이 됐을텐데 부디 올바르게 자랐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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