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 연수 매니저 그녀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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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을 그만 두었다. 채화와의 시간대를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던 과외도 조금 줄였다. 내 삶의 초점이 그녀에게 맞춰져 갔다. 정식 매니저가 된 그녀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계속 미뤄지고 있지만 내게 남은 식나이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입영에 대한 압박감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녀가 일을 마칠 시간이면 나는 그녀의 매장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나는 케이크과 꽃을 준비했다. 그녀에게 줄 작은 목걸이도 샀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으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왔어?”
그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 나를 맞이했다. 깔끔한 물방울 무늬 원피스 차림의 그녀. 난 그녀에게 한아름 꽃을 먼저 안겨주었다.
“고마워. 예쁘다.”
“너만 하겠어?”
그녀가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24살 축하해.”
“응. 고마워 자기야.”
저녁은 내가 사온 케이크과 그녀가 준비한 불고기였다. 케이크는 달았고 그녀가 준비한 불고기는 싱거웠다. 아마도 요리책을 보고 처음 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난 맛있게 다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에게 내가 준비한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녀는 목걸이를 걸고 무척 기뻐했다.
“씻을래?”
“지금?”
“응. 같이 씻자.”
그녀는 멍해보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어떨 때는 도발적이다. 그녀는 내 옷을 벗겼다. 여러 번 그녀와의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떨린다. 그녀도 옷을 벗고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를 번쩍 들고 욕실로 향했다.
우리 두 사람이 들어가면 딱 맞는 크기의 욕조. 나는 온수를 틀어놓고 그녀에게 키스했다. 욕조에 물이 차 올라가는만큼 우리의 체온도 올라간다. 키 차이 때문에 나는 고개를 많이 숙여야했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그녀에게 한발자국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 같아서.
물의 온도를 적당히 맞추고 우린 욕조레 들어갔다. 나와 그녀는 서로를 마주보며 앉았다. 손가락으로 물을 튀기며 서로에게 장난을 친다. 그녀의 윗가슴이 물 위에 약간 떴다. 물기에 젖은 그녀의 몸이 조명을 반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눈부신 그녀인데 지금은 더욱 그렇다.
“좋다. 이러고 있으니까.”
“음.. 막 부끄럽고 그렇진 않아?”
“아니. 정우 넌 부끄러워”?
“아니. 이리로 올래?”
나는 그녀에게 팔을 뻗었고 그녀가 내게로 다가온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물이 출렁이며 욕조 밖으로 넘쳐흘렀다. 온수로 인해 알맞게 데워진 그녀의 몸이 내게 안겨왔다. 가슴의 뭉클함도, 가녀린 어깨의 부딪힘도 내겐 너무 좋았다. 그녀는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언았다. 뒤로 말아올린 그녀의 머리카락 아래 드러나는 긴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채화가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이제 진짜 긴장 안되나봐. 금방 서네?”
그녀가 허벅지에 닿은 내 그곳을 느끼며 말했다.
“긴장은 되는데, 예전만큼은 아니야.”
“왜 긴장이 돼? 내가 무서워?”
“너도 첨엔 긴장했을 거잖아.”
“그렇게 말하면 미안해진다. 자기가 내 처음이 아니라서.”
“너처럼 예쁜 사람을 그냥 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래도 괜찮아. 지금 널 안고 있는 건 나잖아.”
그녀가 등을 내 가슴에 기대왔다. 물이 출렁거리며 내 입까지 침범한다. 난 장난스럽게 퉷퉷 거렸고, 그녀는 키들거리며 고개를 뒤로 돌리며 내게 키스를 요구했다. 나는 그녀의 입에 입맞추며 살며시 그녀의 가슴을 잡았다. 그녀가 내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어온다. 나는 반대급부로 그녀의 두 젖꼭지를 집게처럼 집었다. 그리곤 천천히 그녀의 가슴 전체를 손으로 애무했다.
“나 연하를 만날 생각은.. 흐음.. 한 번도 안해봤어.”
“왜?”
“뭔가 그냥...... 어리게만 보였거든. 동갑도 그렇고. 나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 나보다 7살 연상이었어.”
“그럼 거의 아저씨잖아?”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자기도 알지만 나 되게 덤벙되고 실수도 많잖아. 그래서 누군가 내 실수도 덮어주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자기랑 같이 있으면서 자긴 자기 나이처럼 안 보이더라.”
“내, 내가 노안인가?”
내가 장난스럽게 말했고 그녀는 내 목을 가볍게 물었다.
“자기가 내 자상하게 챙겨주는 거 보면서, 아.. 이 사람도 괜찮을 수 있겠다 했어.”
“그래서, 나 받아준 거 후회 안해?”
“후회하며 집에 까지 불러서 이러겠어?”
“히히. 그렇지. 근데 채화 너 되게 반전인 거 알아?”
난 손을 그녀의 그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부터 그 아래까지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물의 텁텁함과는 다른 매끈함이 그곳에서 느껴진다. 그녀가 종아리를 안쪽으로 모으며 비릿한 신음을 흘렸다.
“자기 그냥 보면 멍하고 백치미인데...... 섹스할 땐 이 여자가 그 여자가 맞나 싶다니까.”
“왜? 너무 과격해?”
“아니. 과격까지는 아닌데. 너무 좋아하고.....”
“그럼 좋아하지 마?”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음....... 그냥 되게 행복해보여.”
“자기랑 하니까 행복하지. 나 그냥 나랑 할 때 자기가 정말 좋으면 좋겠다 싶어서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
나는 그녀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녀와의 격렬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혀가 내 입 안을 휘젖고 들어온다. 목을 뒤로 돌린터라 팽팽하게 긴장된 그녀의 목 근육을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녀가 다리를 앞쪽으로 뻗더니 내 위에 걸터앉는다. 두 팔로 욕조 모서리를 잡고 몸을 지탱한 채 엉덩이만 움직여 내 자지의 위치를 찾는다. 나는 살며시 내 자지를 잡아 그녀의 보지가 쉽게 찾을 수 있게 세웠다.
“자기야, 넣는다?”
“응. 넣어줘, 채화야.”
그녀가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할 때마다 느낀 거지만 채화의 보지는 첫 저항이 있다. 충분히 젖었을 때도 그녀의 보지는 항상 첫 삽입에서는 거절하듯 손을 내젔는다. 하지만 조금 더 천천히 밀고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반긴다.
“흐아앙....”
“아파?”
난 항상 그게 걱정이었다. 혹시 그녀가 아프진 않을까? 경험이 많이 없는 나에겐 섹스의 기쁨도 기쁨이지만 그녀가 아픈 게 더 염려되었다. 그녀가 내 자지를 반쯤 넣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들어오니까 너무 흥분되서. 엣취!”
그녀가 재채기를 하자 그녀의 질이 갑자기 수축해온다. 그러면서 그 질 안쪽 살에 밀려 내 자지가 쑤욱 빠져나왔다.
“어멋! 하하하. 미안 자기야.”
“뭐지? 갑자기 조이는 것 같더니 빠져나왔네?”
“재채기해서 그런가 봐. 다시 넣을게.”
그녀가 다시 엉덩이를 내린다. 일차 저항이 이미 마쳤기 때문에 내 자지는 그녀의 질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오고 나 역시 신음했다. 작은 그녀. 그녀의 질 안 역시 좁다. 정말 질 안의 모든 살들이 내 자지를 감싸서 분자 단위로 그 감각이 느껴질 정도다.
그녀가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녀가 쉽게 움직일 수 있게 허리를 조금씩 움직여 도와주었다. 발기되어 그녀의 질 안에 꽂꽂히 서 있는 내 자지가 앞뒤로 흔들린다. 그녀가 허리를 튕길 떄마다 귀두부터 뿌리까지 그녀가 느껴진다.
“하앙... 하앙...”
욕실 안에 그녀의 신음소리가 에코를 일으킨다. 마치 하울링이 굉장한 콘서트 장에서 섹스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허리 놀림이 조금 더 격해졌고 그녀의 입에서도 좀 더 커다란 신음이 터져나왔다.
“하아! 아응... 하.. 자기야.”
“하아... 채화야. 너무 조이지마.”
“아... 몰라. 나 못 멈추겠어.”
그녀의 상체가 앞으로 많이 엎어졌다. 그 상태로 그녀가 엉덩이를 내게 내 보인 채 몸을 흔들고 있었다. 출렁이는 물로 인해 일링이며 그녀의 보지 안으로 들어가는 내 자지가 자극적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애익이 물에 씻겨나가 도리어 더 뻑뻑해지는 기분이었다.
“자기야. 나 팔 아파.”
“후우. 그래. 이럼 일어서봐.”
그녀가 자지를 뽑고 일어섰다. 나는 그녀를 욕조 반대편에 서게 했다. 엉덩이를 나를 향한 채 그녀는 두 팔로 욕조 모서리를 잡고 몸을 지탱하며 서 있다. 그녀의 아담하고 탄탄한 엉덩이를 타고 물방울이 그녀를 간지럽히듯 흘러내린다.
내 발기된 자지는 빨리 넣어달라고 재촉하며 끄덕거렸다. 나는 채화의 엉덩이를 잡았다. 그녀의 엉덩이는 크지 않고 아담하지만 날씬한 허리 때문에 매우 돋보였다.
“넣어줘. 자기야.”
그녀가 고개를 돌려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자지에 더 힘이 들어갔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천천히 내 자지를 그녀의 신비한 문 안으로 집어넣었다.
“흐윽...”
“하아.... 좋아.. 채화야.”
“나도... 너무 좋아. 움직여줘.”
삽입은 천천히 했지만 실전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젖을 때로 젖었고, 또 흥분할만큼 흥분한 그녀의 보지 안을 빠르게 휘저었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욕실 전체에 퍼지고 여기저기 부딪혀 여러 사람의 신음소리처럼 내게 돌아왔다. 나는 손을 가슴으로 옮겨 그녀의 가슴을 부여잡은 채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물에 젖은 우리 두 사람의 몸에서 철썩이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녀의 환희에 찬 목소리. 나 역시 거친 신음과 숨소리로 화답했다. 우리 두 사람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열기는 우리 두 사람을 삼켜버리는 화염같았다.
“아아! 아아아! 정우야! 하악!”
“채화야아!!”
우리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서로를 불러댔다. 한 번도 누군가를 그렇게 간절하게 불러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그녀의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었다.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새하얀 등 뒤에 펼쳐진다.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것만 같은 그녀의 등, 엉덩이와 그녀의 짙은 머리색은 심한 대조를 이룬다. 내 몸이 그녀를 덥칠 때마다 그녀의 가슴과 머리카락이 심하게 흩날렸다. 우리 몸을 적시던 물방울은 어느새 욕조로 떨어지고, 이젠 우리 몸에서 난 땀이 우리를 적시고 있었다.
“자기야! 아흐흐흑.. 너무 좋아. 나 못 서있겠어! 싸줘!”
“채화야. 조금마안..”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녀의 밀실을 공격한다. 그녀의 외벽은 이미 무너져 가는지 오래다. 이제 가장 깊은 곳의 밀실만이 버티고 있다. 조금만 더 하면 그녀가 굴복할 것이다.
나는 피가 몰려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를 세차게 끌어안고 그녀 안에 사정했다. 그녀의 질 안에 내 정액이 뿌려졌고 그녀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높고 아름다운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아아!”
나는 무릅부터 허물어져 가는 그녀를 붙잡았다. 내 허벅지에도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쓰러질 것 같은 내 몸을 부여잡고 그녀를 내 쪽으로 당겼다. 그리곤 욕조 안에 주저앉았다. 그녀 역시 쓰러지듯 내 몸 위에 등을 댔다.
“하아... 하아...”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린 거친 숨을 내몰아 쉬었다. 마치 몸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숨을 쉬는 기능만 남은 것처럼. 땀이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며 내 눈을 타고 뺨으로 떨어졌다. 나는 간신히 눈을 떠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채화 역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숨을 내쉬고 있다.
“괜찮아 채화야?”
“하응... 응. 자기야. 안아줘.”
나는 그녀를 뒤에서 꽈악 끌어안았다. 그녀가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조금 지나서야 평소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웃음기를 띄운 얼굴로 몸을 돌려 내게 기대어 왔다.
“사랑해, 정우야.”
“나도. 사랑해, 채화야.”
그녀는 두근대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고양이처럼 그렁거렸다.
“이것 봐. 막 떠다니는데?”
“어... 진짜네.”
내 정액이 풀어지다만 채로 물 위에 떠다닌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걸 휘휘 하면서 내 쪽으로 보냈고, 나는 질겁하며 손바닥으로 물을 밀어 발쪽으로 보냈다.
“웃겨. 나 안에 싸놓고 왜 자긴 싫어해?”
“아니...... 이상하잖아.”
“그럼 나한테 이상한 거 싼 거야?”
“말이 그렇게 되나?”
“히히히. 장난이야. 근데 물 다시 받아야겠다.”
욕조의 물은 원래 양의 반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욕조 밖으로 나와 욕조 끝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욕조의 물을 다시 채우며 다시 한 번 길게 키스했다.
욕실 안의 수증기. 그 뿌연 수증기처럼 나도 기억의 시간을 건너 현실로 돌아왔다.
“야.”
“이병, 정우!”
“그거 진짜냐?”
“예! 사실입니다!”
“지랄까네. 야, 세상에 그런 여자가 어딨냐? 아, 이 새끼. 여자친구 사귄 이야기 해보라니까 존나 소설 쓰네. 야.”
“예, 이병 정우!”
김홍찬 병장이 내 철모를 총구로 퉁퉁 쳤다.
“야, 너 나 담달 중순에 전역하는 거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 죽여, 새꺄. 왜 밤에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김홍찬 병장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는 철모도 벗은 채로 전투복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더니 입에 물었다. 뿌연 담배 연기가 기억의 조각에서 헤매던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야. 너 형 소개시켜줄 여자는 없냐? 누나 없어?”
있어도 너는 안 소개시켜준다..... 라고 말할 뻔 했다. 말년 병장. 뭐, 나도 말년이 되면 그렇게 될지 모르지만 김홍찬 병장은 뭘 해도 대충한다. 신병들이랑 놀아주는 게 일과인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분대장이긴 하지만....... 나는 신병이라 잘 모르지만 다른 분대 내 고참들에겐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뭐,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김 병장이 다시 말했다.
“야, 병아리. 너 니 말이 사실이면 이달 안에 여자친구 면회 한 번 오라고. 알았어?”
싸늘해졌다. 9월의 어느 밤, 그 늦은 세 시간 넘어가는 새벽의 찬바람 때문이 아니다. 싸늘해지는 건 몸이 아니라 심장이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김병장의 한 마디가 겨울의 시린 바람보다 더 차갑게 내 심장을 파고 들었다.
심장이 아리면 눈물이 나는 걸까....... 나는 이를 악물며 버텼지만 눈물샘의 자리가 모자랐는지 비집고 나와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야! 아 뭐야, 임마. 안 와도 돼, 안 와도. 하, 뭐 이상한 게 들어와서 말년에 꼬이려고 하냐. 재섭게.”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나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그 때가....... 과외일 몇몇 개를 제외하면 내 모든 시간은 오롯히 그녀를 위한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시간 전부를 그녀를 위해 쓰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심심하면 집에서 혼자 즐기던 게임이 별로 재미가 없고,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좋게 말하면 그럴 것이다. 내가 그녀를 너무 좋아해서, 그녀를 사랑해서 내 모든 시간을 그녀에게 주었다고. 하지만 모든 것엔 서로의 입장과 사정이 있는 것이다. 내 모든 시간을 그녀에게 쓴다는 건 반대로 그녀의 모든 시간을 내가 옭죄고 있다는 것임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모든 것을 주고 사랑하면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겐 어쩌면 집착이라고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문자를 답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구박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도 그녀의 일이 있고 바쁘니까.
하지만 표현하지 않았을 뿐 그녀가 잊고 지나치는 내 메시지에, 받지 않는 전화에 내 마음 한구석엔 조그마한 생채기가 생기는 걸.. 나는 몰랐다.
사랑이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때론 내 사랑이 누군가에겐 속박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그걸 깊이 깨닫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내겐 그녀의 사정보다 내 마음이 더 앞서 있었다.
그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하지만 나는 내 속마음도, 내게 생긴 생채기도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아파도 괜찮지만 그녀를 잃을 수 있다는 마음....... 군대를 가면 그녀를 볼 수 없으니까, 그녀가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마음. 내가 싫어지면 혼자가 될까봐 그녀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내 마음 속에 생채기와 함께 두려움이라는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서 막아놓았다.
그렇게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나에게 화상으로 돌아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야, 얌마.”
“이병 정우!”
“목소리 낮추라고. 다 울었냐?”
“아닙니다!”
“더 울거냐?”
“아, 아닙니다!”
“뭐 다 아니야, 너는.”
김홍찬 병장이 다 타버린 꽁초 앞을 밟아 불씨를 제거하고는 전투복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콜록.”
“지랄. 담배 안 피는 티를 하여튼 엄청 내요.”
“이병 정우. 죄송합니다!”
“시끄럽고.”
김 병장이 길게 숨을 내뱉는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철모 아래 턱끈이 움직였다.
“야, 형도 군대 오기 전에 여자도 많이 사겨보고 했는데, 다 고무신 거꾸로 신더라. 여자는 떨어져 있으면 결국 답이 없는 거여. 울고 그럴 시간 없어. 살다보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그렇더라. 좋아도 남은 건 추억이고, 싫어서 남으면 그냥 기억일 뿐이여. 그런 건 그냥 먼지 떨듯이 떨고, 임마. 너나 나나 아직 젊어. 여자는 많다, 너. 알지?”
“예, 알겠습니다.”
“너 새끼. 통역병이라고 졸라 편하게 지내지?”
“아닙니다!”
“야, 그럼 니 보직이 힘드냐? 그래, 힘든 것도, 땡보도 2년만 지나면 다 끝나는 거여. 피돌이도 취사병도 2년 지나면 늘어나는 건 살 뿐이더라.”
그가 내 뒤통수를 툭툭 쳤다.
“힘내라. 여자랑 헤어졌다고 탈영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여자는 또 있어도, 여기서 실수하면 평생 꼬여. 형이 전역하면 여자 데리고 면회 올게. 알았냐?”
“예, 알겠습니다.”
안 왔다..... 결국.
“너 외국에 오래 살았지? 낼부터 형 전역하기 전까지 영어 좀 가르쳐줘라. 내가 냉동 사줄게.”
“에. 알겠습니다.”
“그래. 야, 교대 온다. 가서 뽀글이 먹자. 형이 찌게면이랑 데미소다 사놨어.”
“예. 알겠습니다.”
유채화. 내겐 꽃보다도 더 아름답던 그 사람. 내 기억에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는 그 사람. 이제는 그녀도 추억이 되었고, 누군가는 아내가 되어 자기를 꼭 닮은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추억은 희미해져 가지만 사랑했던 그 마음은 여전히 불씨와 같다. 바람이 불면 다시 탈 것 같아서 모래를 뿌려둔다.
첫사랑의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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