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왕 신재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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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 수록 삶이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묘한 떨림이 동반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설렘이던 두려움이던.
지금 나는 상담을 하러 왔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하듯, 마음이 아파도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먹은지 오래됐지만, 직접 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탁 트인 넓은 공간이 가장 먼저 인지되었다.
“안녕하세요, 신재희님.”
따뜻함이 묻어나는 공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의 귀를 건드린 목소리였다. 나를 맞이한 건 30대 초? 중? 정도가 되보이는 여선생님이셨다.
“네, 안녕하세요. 아...근데” 부쩍 긴장한 탓에 내가 들어도 내 목소리가 이상했다.
더군다나, 나는 속시원히 말하기 부끄러운 주제로 상담을 하기 원했기에 남자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데스크에서 말했었다.
“그쪽에 편하게 앉으시면 되요. 긴장하지 말고, 크게 숨 들이마셨다가 내쉬어 볼까요?”
“아…네…저 근데, 이런 말씀드려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저 남자 선생님과 상담을 하기로 했는데...” 멋쩍은 나의 웃음은 연애를 한번도 못한 수더분한 시골 총각과 비슷했을까?
“저도 실장님을 통해 전달 받긴 했는데, 오늘 김원장님께서 워낙 상담이 많으셔서, 제가 대신 하기로 했어요. 우선 긴장하신 것 같은데, 호흡을 천천히 해볼까요?”
“스으으으으읍. 하아아아아.” 이렇게 세 번정도 천천히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어 보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 느낌이었다.
“저는 박희수라고 합니다. 일단 편하게 앉으세요. 저와 5분만 대화해도 괜찮아요.”
“네..” 나는 편하진 않았지만,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5분만 시간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남자선생님과 대화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요?”
하얀 피부에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환한 미소로 나에게 집중해주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아름다우면 남자 내담자는 사심이 하나도 들지 않고 상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그게…음…뭐라고 해야되지...그...아 이게 정말 제가 말하기 좀 그런 건데요.”
내가 말을 이어가지 않고, 몇 초의 정적이 흐르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신재희님, 저는 억지로 무슨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또한, 저는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제가 드린 질문이 불편하다면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아니면 5분이란 시간도 불편하신 건가요?”
그리 빠른 템포로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박또박 뱉어내는 문장 한 마디 한 마디가 왠지 모를 설레임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상담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떠오르자 다시금 말하기 부끄러웠다.
“음…저 원래 이런 편이라 아니라서,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릴께요. 사실 전 성적인 이슈로 상담을 받길 원했고, 여자선생님 보다 당연히 남자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이 속시원히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랬어요.”
큰 소리로 자신감있게 대답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눈길을 떼지 않고 듣고 있는 선생님을 보며 마지막 문장의 어미에서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아, 그러셨구나. 음...전 방금 재희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더 궁금해졌지만, 그래도 저랑 대화하긴 어려우시단 거죠?”
밀당의 고수신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나올줄 알았던가. 원래 상담사들은 이렇게 사람 마음을 조물락 잘하는 건가. 갑자기 또 ‘뭐 어때. 그래! 어차피 상담사는 내담자의 정보를 일체 누설하지 않는 게 원칙 아닌가?’라는 얼토당토 않는 개똥철학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뇨. 전 오히려 선생님이 불편하실까봐. 그렇잖아요. 요즘 남혐이니 여혐이니 이런 단어도 종종 나오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들으시며 선생님께서 괜히 오해하실까봐, 그랬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114에 전화해서 짓궂은 아저씨들이 성희롱하는 거처럼 느끼실까봐?”
“물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를 저에게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내담자가 말하는 이야기의 화자가 제가 아니라면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아요. 괜찮아요.”
어릴 적 엄마가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을 방금 문장에서 나는 전달 받았다. ‘내 마음을 토닥여주는 한 마디에 나는 쉽게 녹는구나.’ 라는 생각과 ‘그래 이야기 하자. 편견없이 들으시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요. 어...음....저는...아...이걸 진짜....그니까 전 변태 같아요. 아니 그니까 제가 변태라고 생각해요.”
아직 시작은 하지도 않았어 재희야. 1 단계부터 이렇게 힘들어 하면 말을 다 할 수 있겠니? ㅠㅠ
“전 진짜 남자답거든요? 친구들 아니면 공적으로나 일을 하거나. 그런데...그....아...이게 진짜 말하기가....”
묵묵히 나를 보며 있던 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재희님 올해 서른 맞나요?” “네.”
차트에 적힌 나의 간단한 신상을 확인하며 말을 이어가셨다.
“저는 올해로 34살입니다. 어머니도, 여자친구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이라도, 이세상에서 어떠한 색안경도 끼지 않고 무조건 이해를 해주려고 노력하는 정말 친한 누나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아니, 저도 그...하...이게 진짜...말하기가...저도 답답하긴 한데...음...그니까 전....아 미치겠다. 그 혹시 SM이라고 아시나요?”
“네, 알죠.”
“전 진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벌써 몇 번째 말씀드리는 것 같은데, 남자다운데 전....뭔가 여자한테 지배당하는 게 좋아요. 아 진짜 미치겠다. 이상하죠? 진짜? 아 저 진짜 그래요.이게 말을 다 ....제가 여기온 이유가...제가 이래도 되나...저 진짜...제가 지금 말 엄청 빨라진 거 느껴지시죠?”
무언가에 쫓기다 보면, 겁을 먹다 보면, 심장의 박동도 빨라지고 말도 빨라지는 법이다.
“근데 이게 진짜 고민이에요. 뭔가 나는 이렇게 되어야만 흥분이 되는 걸까? 이게 정상인 걸까? 아니 저도 알아요. 정상 비정상 나누는 거 자체가 비정상인 거. 요즘은 다양성도 많이 인정 받는 거.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아니 이런 성향으로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별의 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이 드는 거예요.”
“그러셨구나. 그러면 혹시 저를 보면서도 저에게 지배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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