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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그녀 # 완결

냥냥이 0 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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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나는 현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현주는 잘 들어왔다는 말과 함께 엉덩이가 아프다고 내게 호소했다. 거듭 미안해지네.

 

다음날이 되어 나는 현주에게 다시 연락했다. 그녀는 서울시청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중이었다.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안 바빠?”

 

“응. 주부가 뭐 바쁠 게 있어.”

 

“배는 안 아파?”

 

“응. 그건 시간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 아직 엉덩이는 아파.”

 

“미안. 혹시 4시에 시간 되면 만날래?”

 

나는 섹스가 고팠다. 여름이었지만 기력이 쇠하기는 커녕 한참 체력이 남아올 때였다. 여름을 앞두고 장어네 뭐네 기력에 좋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인지 나는 혈기가 왕성했다. 꼬추도 잘 서고.... 음..

 

내 말에 현주는 잠시 뜸을 들였다. 수화기 너머의 들릿 듯 말 듯한 작은 한숨소리.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우야. 우리 한 며칠 만이라도 조금 거리를 둬야 할 것 같아.”

 

“음. 왜? 또 그만 만나자고 하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남편이 약간 이상해서.”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여자가 연애를 하고 몸정을 나누다 보면 분명히 달라지는 게 있다. 화장이 짙어지고 생기가 넘치고 하는 건 당연지사다. 최악의 경우에는 남편에게 시들하게 되는 것인데, 현주는 성격상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뜻이야?”

 

“아니. 어제..... 내가 자기 위에서 하다가 무릅이 약간 까졌거든. 그 침대 커버가 약간 거칠었는지 무릅에 상처가 낫는데... 남편이 그거 보더니 어쩌다 그랬냐고 하더라고. 나도 상처 난 줄 모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도 잘 모르겠다고 둘러댔는데.. 내가 엉덩이가 아파서 약간 엉거주춤하게 있으니까 그것도 걱정하면서 왜 그러냐 하는데...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더라구. 그래서 변비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하고 둘러넘겼어.”

 

“응.. 그랬구나. 근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밤에.... 남편이 안 자고 뒤척거리더니 한숨을 길게 쉬면서 이야기하더라고. 자기가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요즘 너무 바쁘고 그래서 나한테 신경 못 쓴 것 같아서 미안하다 하는데.... 그게 그냥 미안하다는 걸로는 안 들리더라. 내가 좀 달라진 걸 아는 것 같아.”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 일주일 정도만 조용히 있자. 그러다 잠잠해지면 다시 만나.”

 

“알겠어. 나도 이번주부터 바쁜 일 있어서.. 오늘 만나고 나면 한주 못 볼 것 같아서 그랬는데. 그럼 그렇게 하자.”

 

“응. 미안. 그렇다고 연락 안하고 그러면 안돼.”

 

“알겠어. 끊을게.”

 

나는 종료버튼을 누르고 가볍게 웃었다. 현주와 만난 것도 벌써 두 달이 넘어간다. 두 달 동안 여자가 그렇게 변했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면 남자가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자기도 바람을 피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의 연락이 끊어진 건 아니었다. 나도 현주와 연락을 끊을 마음이 없었고 현주도 그러했다. 우린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한 번은 현주가 자기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듣고는 잠깐 당황했었다. 나와 현주의 사이는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불륜의 범주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니 나로서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괜찮아. 내가 제일 믿는 친구야.”

 

그 친구는 우리 카페에서 ‘제시’ 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였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죽마고우처럼 지냈다. 영어 카페도 제시가 먼저 가입하고 현주에게 추천해서 가입한 것이었다. 둘은 말 그대로 속내를 다 털어놓고 사는 친구였다. 서로의 비밀은 철저하게 지켜주면서.

 

“친구가 뭐라는데?”

 

“너한테 너무 빠지면 안 된데. 네가 나 책임질 거 아니면. 그리고 애들도 생각해야 하고.”

 

“그래. 친구가 맞는 말 했네. 나도 부정하진 않아.”

 

“친구가 걱정 많이 해. 나는 뭘 해도 티가 난다고. 남편이 알면서도 그냥 있는 거 아니냐고.”

 

나도 그 말에는 조금 동의했다.

 

“시간 되면 내 친구랑 같이 한 번 만날래? 내 친구가 너도 좀 보고 하고 싶은 말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무척 망설였다. 정작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우리 관계를 이야기한다는 게 꺼림칙했다. 어쨌거나 나와 현주는 사회적으론 지탄을 받을 관계니까. 그런 나를 왜 만나려고 할까?

 

“상황 봐서.”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일주일이 지나기가 무섭게 현주는 나에게 연락해 만남을 요청했다. 물론 제시 라는 그 친구도 함께였다. 나는 혹시나 싶어 카페에 들어가 제시라는 이름의 사람을 찾아보았다. 워낙 흔한 영어 닉네임이었기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검색되었다. 나는 찬찬히 프로필 사진을 살폈다. 10대부터 20대까지의 사람들 중에서는 일단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에 걸렀다.

 

남은 사람은 세 명. 한 사람은 기본 아바타였고 다른 한 사람은 현주와 비슷한 선글라스를 끼고 선베드에 누운, 색깔이 무척 화사한 수영복을 입은 여자였다. 아무리 봐도 40대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그 사진을 패스하려고 했다. 하지만 끼리끼리 논다고 하지 않나? 다른 한 명은 아예 프로필 사진이 없었고 활동 내역에도 마지막 로그인이 1년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수영복의 여자가 현주가 말하는 제시 일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수역 부근에 있는 한 카페로 향했다. 나는 시간에 대한 약간의 철칙이 있기에 15분 정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5분 정도 지났을 때 현주와 그 옆에 다른 여자가 한 명이 같이 들어왔다. 현주는 늘 그랬듯이 챙이 있는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화사한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고 제시로 보이는 여자는 알이 작은 붉은 테의 선글라스에 품이 넉넉한 셔츠를 입었다. 팔엔 몇 개의 간단한 색깔의 팔찌를 차고 있었고, 밑에는 슬랙스 느낌의 청바지를 입은 채였는데 그냥 보기에도 라인이 매끈했다.

 

“정우야.”

 

“어, 왔어?”

 

내가 웃으며 현주를 맞이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서로 반말해?”

 

“응. 이상해?”

 

“야, 너랑 11살 차이라며? 근데 무슨......”

 

“왜에... 우리 서로 말 놓고 지낸지 꽤 됐어. 그게 편해.”

 

제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주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선글라스를 벗은 그녀는, 현주에겐 미안하지만 현주보다도 훨씬 동안이었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30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화장으로 커버한 부분도 있겠지만.

 

“안녕하세요? 현주 친구 분이시죠? 정우입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그녀는 나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그러자 현주가 난처해하며 우리 둘을 중재했다.

 

“정우가 외국에 오래 살다와서 그래. 거기선 악수가 인사잖아.”

 

“아, 네. 뭐.. 그래요. 반갑다곤 하지 않을게요. 남지혜에요.”

 

그녀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상당히 보드랍다. 딱 보기에도 그녀는 현주보다 훨씬 부유해 보였다. 이런 카페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자꾸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투썸이 뭐 어때서.

 

“뭐라도 마실래?”

 

“응. 나는 아이스 모카. 지혜야, 넌?”

 

“난 됐어.”

 

그냥 보기에도 까탈스러운 여자다. 대게 이런 여자의 첫인상은 밥맛이 없게 마련이다. 마치 현주의 보호자라도 된다는 듯한 표정은 내 경쟁심리, 그리고 정복심리를 자극했다. 저 나이에 저렇게 입고 다니면서 도도한 척하는 거 보면 이 여자도 보통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나 욕구불만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쩔 셈이에요? 현주랑 계속 만날 건가요?”

 

단도직입. 지혜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나 역시 굳이 피할 마음은 전혀 없다.

 

“네. 만날 건데요.”

 

“얘 유부녀인 거 알죠?”

 

“네. 알아요.”

 

“사람 인생 망치려고 작정했어요? 어쩌려고 그래요? 얘 남편이 아무리 둔해도 모를 것 같아요? 나도 현주 자주는 못 봐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보는데. 내가 봐도 얘가 전혀 다른데 매일 얼굴 보고 사는 남편이 모르겠어요?”

 

“네. 아마 그렇겠죠. 그렇다고 지금 우리더러 정리하라 뭐 그렇게 말하려고 여기 오신 건가요?”

 

내가 다소 냉소적인 투로 말하자 그녀는 약간 약이 올랐는지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

 

“지혜야, 너 왜 그래. 이야기 해보겠다고 만난 거잖아.”

 

“그렇긴 한데. 하아, 너 정말 어쩌려고 그래?”

 

“현주가 무슨 십대 애도 아니고. 우리도 생각하고 합니다.”

 

“아니, 생각하고 한 다는 사람이......”

 

그녀가 목소리를 올리다가 주변을 의식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있는 여자랑 굴러다녀요?”

 

“그래 본 적 없으세요? 있으실 것 같은데?”

 

“정우야, 너까지 왜 그래?”

 

현주가 낮은 목소리로 간청하듯 나와 지혜에게 말했다. 내 말에 열이 받았는지 선글라스를 잡은 지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혜야. 나도 정우도 정리할거야. 그게 빠를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우리 둘다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내가 정리할 마음 아니었으면 너한테 이야기 했겠어?”

 

현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진심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우리의 관계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라고,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11살이나 많은 그녀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다 아는 이야기라도 괜히 입맛이 썼다. 정리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고 입 안에 단내가 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아.... 알았어. 그나저나, 정우씨라고 했죠? 조속히 정리하길 바랄게요. 현주 얘, 애들도 이제 크고, 예민할 시기에요. 그쪽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리다고? 나는 지혜가 한 뒷 말은 듣지 못했다. 나도 어리지는 않아, 이 아줌마야. 어리다는 말에 나는 상당히 기분이 상했다. 날더러 어리다고 하는 이 여자에게 어린 남자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내 앞에서 굴복시키고 싶었다.

 

“아시겠죠? 어휴, 더워. 여긴 에어컨도 잘 안 나오나.”

 

“급한 성격이시네.”

 

그녀가 다시 발끈한다. 현주는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여유있게 내 앞에 서빙된 차가운 커피를 들이켰다. 지혜 역시 분이 나는지 현주의 아이스 모카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나 화장실 좀 갔다올게.”

 

현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은근히 승부욕이 일었다.

 

“지금 생리 기간이지?”

 

“응....”

 

“너 늘 이 시기에 그러니까. 천천히 갔다와.”

 

지혜의 눈쌀이 다시 찌푸려진다. 현주가 자리르 비웠고 나는 다시 커피를 들이켰다. 그런 나를 지혜는 못마땅한 얼굴로 쏘아보았다. 눈으로 커피잔 다 뚫어버리겠네.

나는 잔을 내려놓고 빙글빙글 웃으며 지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혜씨라고 했죠?”

 

“그런데요?”

 

“제 포스팅에 답글 남기셨던데. 기억나요?”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내 프로필 사진이랑 지금이랑 다르니까. 내가 초반에 아바타로 활동할 때 그녀는 내 포스팅에 여러 번 답글을 달았었다. 내가 알아보려고 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나도 전날 우연히 내 포스팅들을 확인하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칭찬일색의 댓글을 달았었다. 영국식 영어발음이 멋있다는 둥.

 

“무슨 말씀이죠?”

 

“영어 까페요. 현주랑 같이 가입되어 있는. 제 글에 댓글 많이 남기셨던데. 기억 안나요?”

 

“아이디가 뭔데요?”

 

“Jay요.”

 

지혜는 내 말에 흡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게 그 쪽이었어요?”

 

“네. 뭐 영어 발음이 멋지네 뭐네 많이 달으셨던데.”

 

“뭐, 그랬었나보죠. 근데 지금 이 일이랑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요. 세상 좁다 뭐 그런 뜻? 처음 만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인연이 있을 줄 몰랐다고요.”

 

“인연은 무슨.......”

 

“영어 왜 배우려고 해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다소 건방지게 앉아 있던 자세도 바꾸어 그녀를 향해 몸을 조금 당겼다. 그녀는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도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건 뭐. 나 이민 가려고요.”

 

“오? 어디로요?”

 

“호주.”

 

“호주 좋죠. 가족 전부 가나봐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약간 흔들렸다.

 

“아뇨. 혼자 가요.”

 

“남편 분이랑 애들은요?”

 

“그냥 사정이 있어요. 뭐 꼬치꼬치 캐묻고 그래요?”

 

“아뇨, 뭐. 저도 호주 살아봐서. 혹시 궁금한 거 있거나 하면 저한테 이야기해요. 저도 호주 갔을 때 초반에 좀 고생해서. 여자 혼자 가서 살기 쉽지 않을텐데.”

 

호주에 살았었다는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외국 오래 살았다 그랬죠?”

 

“네.”

 

“어디 어디 살았어요?”

 

“뭐, 남아공이랑 호주, 또 캐나다도 잠시 있었고.”

 

“호주 어때요? 난 그냥 인터넷으로만 찾아봐서.”

 

진짜 이민 갈 생각인가? 나는 자세히는 아니지만 호주에 사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집세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이나 이민 시에 주의해야할 비자 문제, 그리고 직장에 대한 부분들. 워낙 간략하게 알려주었기에 사실상의 알곡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은 다 빠져 있었다.

 

“그렇구나. 인터넷으로 보던 거랑은 좀 다르네요.”

 

“그래도 가서 살거면 직장이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일 할 생각이에요?”

 

“뭐.. 아직 정한 건 없는데. 미용 쪽으로 할 생각이에요.”

 

“사는 건 리드콤이나 스트랏 쪽에 알아봐요. 집세가 싸지 않지만 그래도 한인들이 많이 살아서 필요한 건 다 구할 수 있으니까.”

 

“뭐, 그래요. 고마워요.”

 

“연락처 알려 줄래요? 내가 좀 정리해서 알려줄게요.”

 

“연락처... 뭐요?”

 

나는 빙긋 웃었다. 연락처가 뭐긴 뭐야. 전화번호지. 하지만 나는 최대한 수위를 낮춰서 말했다.

 

“이메일 알려줘요. 거기로 정리해서 보내줄 테니까.”

 

“나 이메일 잘 안 써요. 컴맹이라서.”

 

“스마트폰에 연동되어 있잖아요.”

 

“그냥 전화로 해요.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까.”

 

그녀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톡톡 거리며 번호를 찍고는 내게 건네주었다. 뭐라고 저장할까? 나는 빙긋 웃으며 ‘하고 싶은 여자’ 라고 저장했다.

 

“현주. 왜 만나요?”

 

“무슨 뜻이에요?”

 

“그쪽보다 나이 훨씬 많잖아요. 그쪽 정도면 얼마든지 훨씬 젊은 여자, 아니 그쪽보다 어린 여자들도 만날 수 있을 건데. 왜 굳이 현주를 만나냐는 거죠? 남의 가정 위험하게.”

 

“궁금해요?”

 

“궁금한 게 아니라, 이상하잖아요.”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 맞아? 나는 피식 웃었다. 뭐라고 대답하는 게 제일 좋을까?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그녀에게 말했다.

 

“현주는 뭐래요? 나 왜 만난데요?”

 

내 질문에 지혜는 잠깐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뭐.. 연애하는 기분이라던데. 현주가 연애 별로 못하고 결혼해서 아마 그런 거 같은데. 그쪽이 말을 잘하나보죠? 아님 왜 현주가 저렇게 빠진 건지 알 수가 없네.”

 

“말은.. 글쎄요. 못한다 하긴 그렇지만 다른 걸 더 잘해요.”

 

“뭔데요? 영어?”

 

“아니. 섹스요.”

 

“뭐라고요?”

 

“섹스요. 몰라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불그락푸르락 했다. 나는 여유있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보세요. 물론 연애하는 기분 그거 참 좋죠. 하지만 현주 입장에서 말이에요. 11살 연하면 정말 애처럼 보일텐데. 안 그래요? 그럼 뭐가 진짜 좋은 게 있어서 만나지 않겠어요? 현주랑 두 달 좀 넘게 만나면서 진짜 별 체위로 다 해봤는데, 확실한 건 우린 진짜 속궁합이 좋아요. 자지랑 보지가 딱 맞물리는 기분이거든. 톱니바퀴처럼. 그런 거 알아요?”

 

“이봐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뭐, 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예요. 그쪽이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가 정분나서 따로 살림 차릴 일은 없을 테니까 안심해요. 나도 현주가 좋고 섹스하면 진짜 황홀하고. 서로 만족하니까 만나는 거죠.”

 

“하아. 진짜 어이없는 사람이네. 미친 거 아니에요?”

 

“내가 거짓맗 하는 거 같아요? 나중에 현주한테 물어봐요. 나랑 섹스하면 기분이 어떤지.”

 

“내가 그딴 걸 알아서 뭐하게요? 뭐하러 물어봐요.”

 

“왜 만나냐면서요? 그래서 대답해줬더니 왜 그렇게 날카롭게 그래요? 무슨 어린애도 아니면서. 남녀가 만나면 섹스하고 하는 거 너무 당연한데. 욕구불만이에요?”

 

“아, 이 씨발놈이. 말이면 단 줄 아나.”

 

지혜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름대로 무서운 표정이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는 도리어 가볍게 웃었다.

 

“하아.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좀 꽉 막히신 건가? 이봐요, 지혜씨. 현주랑 친구면 4x살로 동갑일텐데.”

 

“동갑 아니야. 내가 빠른 생일이라 현주랑 학교 같이 다녀서 그렇지 내가 한 살 어려.”

 

“그럼 나랑 열살 차이네. 난 열살 차이까지는 친구로 보는데.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지혜는 이제 황당함을 넘어 내가 이 따위 인간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야하는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런 느낌이라도 들어야지. 너도 나 들어오자마자 무시했잖아. 나도 좀 그래보자. 물론 여기서 끝낼 마음은 없지만.

 

“솔직해지자. 네가 현주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나도 현주 가정 망칠 생각없어. 그러니까 너무 염려하진 말고. 현주도 너랑 같이 나온 거 보면 마음 정리해가는 것 같으니까. 네가 중간에서 설치면 나나 현주가 서로 마음만 상하고 곤란해져. 그러니까 우리가 잘 정리할 수 있게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나는 미소를 띄우고 있다가 점점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혜는 내 말을 듣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나와 현주를 억지로 떼어내려다 생길 부작용을 인지한 듯 했다. 어른은 어른이다.

 

“알았어. 대신 빨리 정리하면 좋겠어.”

 

“그러도록 노력할게. 현주 온다.”

 

지혜의 등 뒤로 현주가 다가왔다. 현주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미안. 내가 좀 늦었지. 두 사람 싸운 건 아니지?”

 

“아니야. 지혜씨도 잘 이해해 주시고 그래서 이야기 잘 됐어. 되게 이해심은 많으시더라. 네 걱정도 많이 하시고. 그렇죠, 지혜씨?”

 

내가 웃으며 지혜를 보고 말했고 지혜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짧게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주야, 나 먼저 일어날게.”

 

“왜? 가야 돼?”

 

“회의 있는데 시간 내서 나온 거야. 지금 가야 시간 간신히 맞출 거 같애.”

 

“아, 그래. 바쁘면 먼저 가.”

 

“그래. 그럼 간다. 지혜씨도 반가웠어요.”

 

나는 다시 손을 내밀어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지혜는 다소 굳은 표정이었지만 손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빙긋 웃어보이고는 카페를 나섰다.

 

 

사흘이 지났다. 나는 호주 이민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출력했다. 처음부터 메일로 보내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지혜를 만날 구실이었을 뿐.

 

나는 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뭘 하고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난 인내심을 발휘해 두 번 더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상대편에서 전화를 수신했다.

 

“여보세요?”

 

“지혜야. 나 정운데.”

 

“여보세요? 누구시라고요?”

 

“정우라고. 기억 안나?”

 

내가 가볍게 웃었고, 지혜는 그제서야 기억이 나는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전화 왜 안 받아?”

 

“모르는 번호길래. 근데 왜 전화했어요?”

 

“호주 이민에 대한 자료를 좀 뽑았는데, 전달해줄까 해서.”

 

“그걸 진짜 했어요?”

 

“응. 왜 근데 자꾸 존댓말이야? 서로 말 놓기로 한 거 아니었어?”

 

내가 키득거리며 말했고 지혜는 약간 분하다는 투로 말했다.

 

“열살이나 어린 게 누나한테 맘대로 반말이야, 진짜. 어이없네.”

 

“너도 반말 해. 안 바쁘면 저녁에 잠깐 볼래? 서류 전달해줄게.”

 

“몇시에?”

 

“한 일곱시 쯤?”

 

“알았어. 어디서?”

 

“나 사무실이 강남인데. 이쪽으로 올 수 있어?”

 

그녀는 약간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대답했다.

 

“그래. 그쪽으로 갈게.”

 

“저녁은 네가 사.”

 

“뭐? 무슨 저녁이야?”

 

“나 이거 자료 모으느라 호주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하고 그랬는데? 수고비는 줘야할 거 아냐? 그냥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저녁 사.”

 

“알았어. 뭐 먹고 싶은데?”

 

“네가 정해. 난 아무 거나 괜찮으니까.”

 

“그럼 빕스 괜찮아?”

 

빕스? 나야 너무 감사하지.

 

“응. 뭐 그정도도 괜찮겠다.”

 

“그래. 그럼 7시에 반포역 쪽에서 만나.”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뜨거운 게 몸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분이랄까? 솔직히 현주와 비교하자면 지혜의 몸매는 훨씬 좋았다. 정말 자기 관리 잘하는 돈 있는 돌싱 느낌이랄까? 슬랙스와 핏이 정말 잘 맞던 엉덩이. 그리고 헐렁한 옷 너머로 느껴지는 가슴. 모든 면에서 현주보다는 훨씬 낫다. 물론 중요한 건 해봤을 때의 느낌이 중요하지만.

 

나는 일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빕스 반포점으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이제 여유있게 기다리면 된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장미를 사는 아주머니에게서 장미 한 송이를 샀다. 다발도 있지만 그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내 뒤에 와서 인기척을 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지난 번처럼 뾰족한 테를 가진 선글라스를 쓴 지혜가 서 있었다.

 

“뭐야? 어디서 온 거야?”

 

“안에서 나왔지. 건물 밖에서 뭐해?”

 

“왜 안에서 나와?”

 

“주차장이 안에 있으니까. 몰랐어?”

 

모르지. 난 여기 처음 왔으니까. 차도 끌고 오지 않았고.

 

“뭐야, 이건?”

 

“아 장미? 여기 서 있는데 어떤 여자가 주고 가던데?”

 

난 향기를 맡는 시늉을 했고 지혜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기 많아 좋겠네.”

 

“하하. 장난이야. 너 주려고 샀어.”

 

내 말에 지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이 선글라스보다 클 지경이었다. 나는 웃으며 장미를 지혜에게 건넸고 지혜는 얼떨떨해 하며 장미를 받았다.

 

“왜 날 줘?”

 

“샀어.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역시 잘 어울리네. 뭐가 꽃인지 구분이 안 가네.”

 

나의 쓰잘떼기 없는 개드립에 지혜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보였다. 일단 웃었으면 성공이지, 뭐.

 

우린 상가 안에 위치한 빕스로 들어갔다. 저녁 메뉴는 제법 비싸다. 나는 샐러드 바나 즐길 생각이었다. 그렇게 저녁을 많이 먹는 편도 아니니까. 그러나 그녀는 자리를 안내받고 앉자마자 주문했다.

 

“스테이크 먹으면 되지?”

 

“어? 스테이크?”

 

“호주에 살았다면서? 호주 스테이크 유명하던데. 거긴 고기 많이 안 먹어?”

 

“먹지. 스테이크 사주게?”

 

“저녁 사달라며?”

 

뭐,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녀는 그녀의 원대로 스테이크 2인분을 주문했다. 그녀는 의외로 장미가 마음에 드는지 우리 자리 옆 창틀에 장미를 올려놓고 자꾸 처다보며 최대한 티나지 않게 히죽거렸다. 뭐, 그런 걸 놓칠 내가 아니지만.

 

“꽃 선물 처음 받아?”

 

내 질문에 그녀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무슨 소리야? 선물 많이 받아봤지.”

 

“근데 왜 자꾸 보면서 히죽거려?”

 

“뭘 히죽거려. 그냥 오늘 있었던 일 생각나서 그런거지.”

 

“아 그래? 별로 맘에 안 들면 버릴까?”

 

내가 장미 쪽으로 손을 내밀었고 지혜는 황급히 비닐에 쌓인 장미 줄기 부분에 손을 갖다댔다. 나는 웃으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지혜는 다소 민망한지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오랜만에 받아보긴 하네.”

 

“남편이 선물 한 번씩 안 줘?”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소 원망이 섞인 눈초리. 나는 늦게 감을 잡은 나에 대해 질책했다. 조금 일찍 알아차렸다면 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텐데.

 

“나. 이혼한지 좀 됐어.”

 

“아, 그래. 미안.”

 

“네가 뭐가 미안해. 그 인간이 잘못이지.”

 

“남편이 바람 폈어?”

 

그녀가 손을 턱에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여전히 장미를 향해 있었다. 1, 2년 된 게 아닌 듯 싶었다. 그냥 내 느낌이 그랬다.

 

“남편이 라식 안했어?”

 

“라식? 갑자기 라식은 왜?”

 

“아니, 아내가 이렇게 예쁜데 한눈 파는 거 보면 시력이 나쁜 거 같아서. 돈이 없었나?”

 

독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근데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근데 문제는 이런 게 먹힌다는 거에요.

 

내 말에 그녀가 푸훗 하고 웃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제대로 웃는 모습을 보았다. 날카롭고 늘 인상을 쓰고 있어서 별로 첫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저렇게 웃는 걸 보니 제법 귀여웠다. 열상이나 연상인 여자에게 귀엽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정도로 동안이면 충분히 그런 말 해줄 수 있지, 뭐.

 

“뭐래는 거야? 큭큭. 뭐 남편이야 나보다 젊은 년 따라 간 거지.”

 

“위자료 받았어?”

 

“응. 엄청.”

 

그래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거겠지. 대체 위자료를 얼마를 받아낸 거야? 홀몸으로 이민을 생각할 정도라면 재정적으로 제법 넉넉하다는 이야기인데. 입고 다니는 옷이나 선글라스도 죄다 좋은 브랜드다. 엄청난 명품까지는 아닐지라도 지혜가 걸치고 다니는 옷과 가방만 해도 대략 몇백만원은 될 것 같았다.

 

“다행이네. 그럼 애들도?”

 

“아들 하나 있는데 아빠가 데려갔어.”

 

“보통 엄마한테 양육권 주지 않아?”

 

“내가 줘버렸어.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아빠랑 너무 닮았고. 그 애 보면 그 인간 생각나서 잘해 줄 수가 없을 것 같았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측은해보였다. 그렇다고 나는 섵불리 위로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딱 보기에도 그녀는 자존심이 강해보였다.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것도 그녀에겐 어쩌면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말 없이 얼음물을 한 잔 들이키고 그녀에게도 물을 따라 주었다.

 

스테이크는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적당했다. 호주 스테이크를 먹다가 빕스 스테이크를 먹으면 사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식사를 하면서 잡다한 이야기를 했다. 취미에 대한 이야기, 이민 가면 있을 어려움에 대해서도.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내게 역으로 질문을 할만큼 잘 듣고 있었다. 장미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내게 마음이 많이 풀어진 듯 했다.

 

“현주는 안 만났어?”

 

“응. 아직.”

 

“왜?”

 

“생리 중이잖아.”

 

“하아.. 넌 섹스하려고 현주 만나니?”

 

그녀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입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닌데. 이제 슬슬 나도 현주도 정리해야 하잖아.”

 

“진짜 정리할 모양이네.”

 

“그래야지. 현주 같은 여자 찾기도 쉽지 않겠지만. 뭐,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흐흥. 현주 뭐가 그렇게 좋은데?”

 

“말했잖아. 섹스. 속궁합 잘 맞다고.”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고, 지헤는 눈쌀을 찌푸렸다.

 

“뭐가 그렇게 잘 맞는데? 넌 자꾸 이런 쪽으로만 이야기하니?”

 

“아니, 사실인데 그럼 어쩌라구.”

 

“뭐가 잘 맞길래?”

 

“음. 현주랑 하면.... 뭐랄까? 현주 질이 진짜 쫄깃하고 잘 조여줘. 펠라치오도 정말 잘하고. 펠라치오 하나만으로 나 사정하게 만든 여자는 현주가 거의 처음이거든.”

 

“하아.... 진짜 못하는 말이 없다.”

 

“현주가 가슴은 좀 작아도 그래도 허리도 정말 잘 쓰고. 현주 허벅지 봤지? 날씬한테 탄탄하잖아. 예전에 현주가 위에서 하는데 진짜 장난 없더라. 영혼까지 빨리는 기분이었어.”

 

지혜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민망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돌려 말하지 않으니까. 섹스에 대해서라면 나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게 내 대화의 화법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별을 두긴 하지만.

 

“엄청 잘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응. 잘한다고 생각해. 현주한테 안 물어봤어?”

 

그녀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물어봤구나? 나는 속으로 키들거렸다. 분명히 물어봤을 것이다, 저 반응이라면.

 

“뭐라고 하던데?”

 

“안 물어봤어.”

 

“진짜 안 물어봤어? 물어본 거 같은데?”

 

“안 물어봤다니까!”

 

“그래? 이상하다. 현주는 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거 꼬치꼬치 묻더라고 나한테 그러던데?”

 

“뭐? 아니야. 그런 건 안 물어봤어.”

 

그녀가 황급히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난 가볍게 웃어주었다.

 

“나 잘한다고 하지?”

 

“그래, 잘한다고 하더라. 아니.. 그게 아니고.”

 

“안 물어봤다며?”

 

난 히죽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민망한지 고개를 돌려 내가 준 장미만을 응시했다. 나는 가방에 넣어두었던 이민 관련 서류를 모은 파일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파일을 받았다.

 

“이게.. 그거야?”

 

“응. 모을 수 있는만큼 모았어. 호주가 근래에 이민법이 많이 까다로워졌거든. 예전에는 영주권 정말 쉽게 줬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고마워. 정말로.”

 

“이걸로 화해하는 거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번의 악수 있었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악수를 하는 대신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중지 끝을 두 손가락을 꼬옥 잡았다. 그러자 지혜가 아얏 하는 소리를 냈다.

 

“뭐해?”

 

“응. 나 마사지 할 줄 알아서. 너 잘 체하지?”

 

“어? 어떻게 알았어?”

 

“그냥 눌러보면 알 수 있지. 많이 먹지도 않고. 스테이크 1/3도 안 먹냐. 여기 비싼데.”

 

“속이 잘 안 받아서.”

 

“속병은 그냥 방치하면 큰 병 된다. 내가 잠깐 봐줄까?”

 

지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마사지 해줄게.”

 

 

 

프론트에서 지헤가 카드를 꺼냈다. H 카드. 그것도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멤버에게 주는 카드였다. 그녀는 30만원 가까이 하는 방을 표정 한 번 바꾸지 않고 결제했다. 대체 돈이 얼마나 있는 걸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서 나는 그녀의 몸을 훔쳐보았다. 첫날에 헐렁한 옷을 입고 와서 몰랐지만 오늘은 제법 달라붙은 티셔츠를 입었다. 덕분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 본 날도 느꼈지만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엉덩이는 정말로 탄탄해보였다.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샤워부터 하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내가 침이 넘어갔다. 아직 샤워실로 뛰쳐들어갈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꼭 욕실에 들어가고 싶다. 나는 뭔가 묘책을 생각해 내야했다.

 

나는 욕실 문을 두드렸다.

 

“지혜야.”

 

“왜, 왜?”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에서 하기 전에 욕조에서 몸을 풀어줘야 해. 그래야 온수로 몸을 데운 상태에서 전체적은 근육을 풀어줘야 몸에 무리가 안 가.”

 

“그냥 나 씻고 나서 하면 안 돼?”

 

“마사지 해줄 거 제대로 해주고 싶어.”

 

그녀가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난 푸쉬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렸다. 그러자 기다리던 그녀의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어 . 들어와, 그럼.”

 

나는 쾌재를 부르며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팬티만 입고 욕실 문을 열자 수건으로 몸을 가린 지혜가 서 있었다. 도도하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녀는 당혹함에 물든 표정이었다.

 

“잠시만. 내가 물 받을게.”

 

나는 욕조에 물을 채웠다. 커다란 조개 모양을 한 욕조. 나는 물을 채우며 그녀의 어깨에 오일을 발라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었다. 변기에 그녀를 앉혀놓고 한참을 주무르자 지혜는 다소 긴장이 풀리는지 몸에 힘이 빠져갔다.

 

“수건 벗자.”

 

나는 수건을 감싸고 있던 그녀의 팔을 자연스럽게 풀었다. 그러자 동그랗게 커다란 가슴이 그 아름대운 자태를 드러냈다. 나는 내 흥분한 숨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선 그녀의 엉덩이는 정말 굉장했다. 지혜의 엉덩이는 운동한 티가 역력했다. 스쿼트를 대체 하루에 몇 개 하는지 궁금증이 일 정도였다. 나는 욕조로 들어가라는 식으로 가볍게 그녀의 엉덩이를 떄렸다. 내 손바닥을 튕겨낼 정도의 탱탱함. 이 정도 엉덩이의 탄력은 흑인이 아니면 경험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혜가 욕조로 몸을 담그었고, 나는 욕조 머리쪽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등을 내 쪽으로 향하게 하고 어깨를 주물렀다. 이미 아까의 마사지로 충분히 말랑해진 그녀의 어깨. 나는 손을 조금씩 앞쪽으로 내려가며 마사지했다. 나는 유부와 천정혈 쪽을 가볍게 눌러주었다. 그녀의 약간 통증이 있는지 흡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힘 빼고. 여기는 원래 조금 아파.”

 

“응. 너 이거 잘해?”

 

“나야 제대로 배웠으니까.”

 

“그래? 너 대체 정체가 뭐니?”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계속 마사지했다. 나는 손을 점점 더 아래로 내렸다. 이제 천정혈을 지나 그녀의 풍만한 가슴 위를 만졌다. 그녀는 윗가슴도 제법 있는 체형이어서 만지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나는 가슴골 쪽을 마사지 하면서 손을 더 아래로 내려 밑가슴 쪽도 부드럽게 훑어갔다.

 

“가슴 때문에 목이랑 허리 제법 아프겠다. 괜찮아?”

 

“아프지.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잖아.”

 

나는 다시 손을 목과 어깨 쪽으로 올려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당장이라도 가슴을 꽉 쥐어버리고 싶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녀를 욕조 한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를 들어 발바닥부터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아... 거긴 정말 시원하다.”

 

“마사지 많이 안 받아봤어?”

 

“타이 마사지만 좀 갔는데....... 아프기만 해서.”

 

“마사지사가 실력이 별로였나 보네.”

 

난 웃으며 발바닥을 적당하게 눌러주었다. 발바닥은 처음에 누르면 시원하지만 조금 강하게 하면 통증이 있다. 그래서 힘조절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너 발도 되게 예쁘네.”

 

“나이 먹은 아줌마가 뭐가 예쁘냐?”

 

“흐흐. 맘에 없는 소리하긴. 나는 안 예쁜데 예쁘다고 하진 않아. 여자의 외모로 거짓맗 하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지.”

 

“뭐...... 근데. 넌 결혼은 안 해?”

 

“글쎄. 적당한 사람이 생기면.”

 

“적당한 사람이 누군데?”

 

“글쎄...... 내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여자?”

 

그녀가 그게 뭐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그녀의 발바닥, 종아리를 번갈아 마사지하며 내 이야기를 잠깐 했다. 내게 있었던 사고, 임신을 시킬 수 없는 상황 등을 담담한 투로 이야기 했다. 지혜의 날카로운 눈꼬리가 조금 내려왔다.

 

“뭐, 요즘은 애 안 낳고 사는 사람도 많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그게 현실에 딱 부딪히면 그렇지 않더라.”

 

“좋은 사람 만날 거야.”

 

“그럴까? 너 정도 여자라면 얼마든지 대쉬해 볼텐데.”

 

“돌았니? 나 너보다 열살이나 많아.”

 

“결혼은 아니더라도 연애는 충분하잖아. 길거리에 너랑 같이 돌아다니면 아무도 네가 열살 연상이라고 생각 안 할걸? 비슷한 나이 때라고 보지.”

 

내 말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 기분 나쁠 여자는 없었다.

 

“됐거든. 어디서 개수작이니?”

 

말은 곱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나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 말이 귀엽게 느껴졌으니까. 나는 양쪽 종아리까지의 마사지를 마치고 다리를 내려놓았다.

 

“끝난 거야?”

 

“아니. 허벅지랑 허리랑 더 해야하는데. 내가 이 자세로는 할 수가 없어서. 욕조 안으로 들어가야 해.”

 

“응.. 그럼 들어와.”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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