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형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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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나는 운이 좋게도 우리 도시에 있는 국립대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나는 캠퍼스의 낭만을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집 형편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스무살에는 어울리지 않는 걱정 뿐이었다.
그나마 우리 지역에서는 이름 알려진 대학이라 과외도 하고 방학이면 알바도 하면서
생활비와 등록금을 마련하며 1학년을 그렇게 캠퍼스의 낭만 따위는 없이 바쁘게 보냈다.
그렇게 1년이 정신없이 흐르고, 겨울방학이 가까워오던 늦가을
당시 국민 SNS였던 싸이월드로 쪽지가 한장 와 있었다.
익숙한 이름... 잊혀질 듯 바래져 가던 이름... 그 아이에게서 쪽지가 와 있었다.
"잘 지내?" 라는 한마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설레임일까 희미해진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을까...
나는 아무일 없는 듯 "난 잘지내지~ 넌 어떻게 지내?" 라고 답장을 보내고는
이 후 며칠간 하루에도 몇 번씩 쪽지를 확인하였다.
기대감이 기다림이 되고, 점점 실망감이 되어갈 쯤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너 국립대 붙었다면서? 나 그옆에 있는 전문대 간호학과 다녀~ 가깝게 있으면서 어떻게 얼굴 한번 못봤냐?"
그녀가 근처에 있었다. 이제는 먼 곳에서 점점 잊혀질 일만 남은줄 알았던 그녀가
나와 지척에서 서로 1년이나 존재를 모르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잊혀지고 있었던 그녀가 갑자기 보고싶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대뜸 "010-8xx7-5x2x" 내 전화번호 11자리만 답장으로 보냈다.
그리고는 다음날 저녁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이 시절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문자와 전화로...)
그녀 : 야, 어떻게 바로 옆에 있으면서 한번 마주치지도 못했냐? 마치고 한번 보자~
나 : 그래 그러자. 오늘은 안되고 내일 시간 되면 보자.
그녀 : 그래. 그러면 내일 6시에 너네 학교 정문앞에서 보자.
나 : 알았어. 내일봐~
그녀 : 뭐야~~ 나 안반가운가 보네? 난 엄청 궁금하고 보고싶고 그랬는데~
나 : 응? 아~ 과외중이라서. 나도 반갑고 보고싶고 그래~
그녀 : 엄청 많이 반가운거지?
나 : 그럼~ 엄청 엄청 많이 많이 반갑지~~ ㅎㅎ
그녀 : 그럼 반가움의 표시로 우리 만날때 인사는 포옹으로 해주라~ ^^
나 : 어? 학교 정문에서? 사람 많을텐데....?
그녀 : 역시 넌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군... 됐어... 그렇지 뭐...
나 : 아냐!!! 반가운 만큼 꽉 안아주지!!! 너 후회나 하지마~!!!
그녀는 오랜만의 연락에도 나를 놀리는 것 같이 느껴졌고, 나는 뭔가 객기가 올라와서 더 쎄게 나갔다.
그러면 그녀도 당황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쎈 아이였다.
그녀 :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얼마나 쎄게 안아주는지 ㅋㅋㅋㅋ
나 : 너 갈비뼈 나갈수도 있으니까 아주 단단히 마음먹고 와라 ㅋㅋㅋ
그리고는 그날 밤 잠을 좀 뒤척였다. 그녀를 오랜만에 봐서일까, 이제는 형과는 상관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죄책감은 흔적도 없었고, 기대감과 설레임이 조금씩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이튿날, 아침부터 뭔가 들뜬 기분으로 무슨옷을 입을까, 후드티를 입을까 셔츠에 자켓을 걸칠까,
어떤 신발을 신을까, 하얀 운동화? 구두?
머리는 수수하게 할까 멋을 좀 내어서 세워볼까?
평소에 좀 꾸며볼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남방에 자켓이나 걸치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다. 평소처럼.
매일 비슷한 남방에 자켓을 입어서 친구들은 나에게 그 패션을 교복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학교에 가서도 저녁 6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수업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지루한 기다림에 지쳐 20분이나 일찍 나가서 기다렸다.
6시 10분 전, 그녀가 다와간다는 문자를 했고, 나는 이미 기다리고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윽고 저쪽에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손을 머리위로 들어 흔들며 인사를 하자
그녀는 밝게 활짝 웃으며 달려와 나에게 팍 안겼다. 정말 나에게 안겨버렸다.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나였지만, 그 순간 만큼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지 않았고,
영화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그녀를 내 품안에서 꽉 안아주었다.
그녀는 내 가슴팍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그녀 : 진짜 많이 반가운가 보네?
나 : 반가운 마음 절반 정도만 안고있는거야. 반가운 만큼 안았으면 너 많이 아플걸?
그녀 : 와~ 정말? ㅋㅋㅋ 그럼 나 오늘 뭐 맛있는거 사줄거야?
나 : 너 먹고싶은거 다 사줄게.
나는 뭔가에 홀린듯 대답했다. 후에 생각해 보니 그녀는 남자를 잘 다룰 줄 아는 것 같았다.
형이 그녀에게 그렇게 퍼다준것도 이해가 되었다. 나도 조금은 그랬으니...
그렇게 우리는 학교 앞에서 파스타를 저녁으로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와는 그간 어떻게 지낸건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1년간의 안부에 대해 길게 대화를 이어갔다.
공대생이 가지고 있던 간호학과의 로망, 간호학과생이 가지고 있던 공대생활의 궁금증 등...
그러나 우리 대화 중에 형의 이야기나 그날 우리의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런 늬앙스나 분위기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이성친구일 뿐인것 처럼 대화했다.
그녀도 그날의 나와의 일은 기억에서 잊은 듯 보였다.
그녀 : 근데~ 너 진짜 아까 왜 나 안아줬어?
나 : 그야 당연히 반가워서 그랬지... 왜? 별로였어?? (뭐야... 자기가 안아달라고 한거 아니었나?)
그녀 : 그래? 그냥 반가워서 그렇게 사람 많은데서 안아줬다고?
나 : 그... 그럼~~ 엄청 많이 반가웠으니까...
나는 그녀가 불쾌하였을까 걱정이 덜컥 되었다. 나 너무 진상처럼 보였을까...
그녀는 가방에서 화장품이 든 파우치를 꺼내더니 눈 화장에 쓰는듯이 보이는 연필 같은걸 꺼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아서는 자기 앞쪽으로 당겨 가져갔다. 당황해 하는 나를 보며 쓰윽 웃더니
왼손으로 내가 보지 못하게 가리고는, 내 손등에 그 연필같은 화장품으로 뭔가를 쓱쓱 쓰기 시작했다.
살짝 웃으며 놓은 손을 가져와 보니 손등에는 반짝반짝 펄이 들어간 연필로
커다란 하트 속에 "내꺼"라고 쓰여져 있었다. 미소가 지어졌다. 웃음이 났다. 뭔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 : 너 뭐야 이거? ㅋㅋㅋㅋ
그녀 : 뭐~ 어쩌라고~~
난 곧바로 그녀의 손을 가져와 똑같이 손등에 하트와 내꺼라고 적어버렸다.
그녀는 "뭐야~ 따라쟁이냐?" 라며 웃었고, 나는 "뭐~ 어쩌라고~~"라며 이 마저도 따라해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꽁냥거리다가 그녀가 시간도 늦었는데 동네 근처에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그녀와 떨어지기 싫은 기분이 들어 그러자고 하였고, 우리는 버스가 끊기기 전 동네 근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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